2023. 6. 30. 18:11ㆍKAIST
(논리적 글쓰기 수업의 과제였던 글입니다.)
2003년 5월 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항공모함에서 이라크전의 종전선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은 한 남자를 이라크 과도 행정처의 수장으로 임명한다. 그의 이름은 폴 브리머, 미 동부 코네티컷주 출신인 그는 예일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MBA를 취득, 국무부에서 23년간 일하며 헨리 키신저의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던 이력의 소유자였다. 전후 사회 혼란과 미군의 끔찍한 민사작전 능력 때문에 고통받던 이라크인들은 이 새로운 인사가 부임해온다는 소식에 실질적인 재건에 대한 희망으로 그의 부임을 환영했다. 여기에 부응하듯 브리머는 이라크에 도착하자마자 이라크의 민심을 수습하는 행보를 보였다. 지역 지도자들을 만나 파괴된 인프라와 치안회복 등의 안건을 듣고, 이라크 재건에 이라크인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공언했다.
브리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열심히 일한 것이 이라크에게는 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바트당원들을 공직에서 제거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공적 기능의 정지를 막기 위해 몇몇 고위직 당원들만 공직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방침을 잡았다. 하지만 이런 워싱턴의 입장과는 달리, 브리머는 모든 바트당원들을 추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와 같은 조치가 후세인 정부의 잔재를 뿌리 뽑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명확하면서도 대중적인 선언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다음날, 이라크의 모든 관청, 막사, 학교가 비어버렸다. 공무원이 되려면 바트당원이어야 했기 때문에, 바트당원들을 쫓아내자 모든 공공기관이 정지해버렸다. 군대도, 경찰도 해산해버린 탓에 이라크 성인 남성 40%가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브리머의 국무부 경험 덕분에 중동 사회에 대해 어느 정도의 식견은 갖추고 있다는 기대도 신기루와 같이 사라졌다. 브리머는 그의 자치정부 수립 로드맵에 의해 구성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가 이라크 신헌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문제는 위원회 헌법 자문관에 뉴욕대학 로스쿨 교수 노아 펠드만을 임명했던 것이었는데, 그는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온 이라크가 유대인이 신헌법에 손을 댄다는 사실에 들끓어 올랐고, 미국인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을 우려하던 이라크 최고 시아파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시스타니가 신헌법 제정 과정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자 브리머는 그와 교섭하기 위해 사절을 보냈는데, 플로리다 출신 비뇨기과 의사였다. 이유는 그가 아랍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엔 제약회사 직원을 보냈는데, 마치 바티칸에 교황 알현사절로 동네 치과의사를 보내는듯한 이런 태도는 아야톨라가 이라크인들은 미국인들에 의해 진행되는 헌법제정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파트와를 발표하게 만들었다. 그의 파트와는 이라크인들의 철저한 비협조 속에 브리머의 헌법제정 위원회와 정치 개혁 로드맵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고, 이라크 자치정부의 수립을 훨씬 더 뒤로 미루게 했다.
어떻게 이렇게 무지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최고 행정관이라는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사실 브리머는 이라크에 와본 적도, 군 경험도, 아랍어 능력도 없고, 심지어 이라크로 가기 전에는 국무부가 아니라 컨설팅 펌에 재직하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딕 체니를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들과의 친분이 그것이었다. 이라크에 ’진짜‘ 공화당원 한 명만 보내놓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미국 정부 수뇌부들의 생각이 이라크의 미래를 망쳐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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