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2023. 6. 30. 17:57KAIST

(내가 사랑한 KAIST, 나를 사랑한 KAIST 대회 출품작입니다.)

지구는 정말로 둥글까? 9.11 테러는 조작되었나? 미국 정부를 조종하는 딥스테이트의 배후는 누구인가? 히틀러는 죽지 않고 남극으로 도망쳤나? 지구온난화는 조작인가? 달 착륙은 조작인가? 코로나 백신에는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한 정부의 마이크로 칩이 들어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비웃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다. 미국 기준으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2%,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는 사람들은 무려 25%. 코로나가 통신사의 5G 기지국을 통해 전파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항의 시위가 있었던 것이 불과 작년인 것을 보면 인류가 달에 다녀오고 소아마비를 정복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비과학적인 음모론들은 어디선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는 이러한 음모론과 유사과학을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인 마크 서전트는 40대의 나이로 일정한 직업 없이 엄마 집에 얹혀살고 있다. 그의 일과는 음모론 분석으로 지구 평면운동에 뛰어들기 전에는 로즈웰과 51구역, 예수회와 비밀결사, 로스차일드가나 렙틸리언이라는 파충류 인간들에 대한 가설들을 다뤘다. 처음 지구 평면설을 접한 마크는 바닷가에 가서 수평선을 보고 실제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느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유튜브에 짧은 영상 하나를 올린다. 제목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증거”. 그가 올린 영상이 5개가 되기도 전에 그는 지구 평면설 사회의 스타가 된다. 구독자와 댓글이 늘고, 관련 팟캐스트에 출연 요청을 받으며, 심지어 밖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생긴다. 이성에게 인기가 없던 그는 지구 평면설 덕분에 예쁜 여자친구도 만들 수 있었다.

다큐 후반부에 나오는 평평한 지구 국제 컨퍼런스에서도 다양한 지구 평면설 지지자들이 나온다. 평범하게 지구는 평평하다는 티셔츠를 나눠주는 사람부터, 거대한 돔이 평면 지구를 감싸고 있는 모형을 전시하는 사람, 수제 평면 지구 오토바이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컨퍼런스에 와서 평면 지구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고 그들의 주장을 증명해줄 실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컨퍼런스에 참가한 인원수도 내 생각보다 훨씬 많았는데, 미국인의 2%만 해도 800만 명이 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했다.

먼저 다큐를 보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을 널리 공유할 수 있었을까?”였다. 1970년대였다면 주인공 마크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엄마와 동네 술집 사람들 몇 명이 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SNS와 유튜브가 있는 세상에서, 마크는 다른 마을에 사는 또 다른 마크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해소할 수 있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SNS의 특성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바로 사용자 맞춤 기능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사용자가 검색한 기록이나 주제, 상호작용한 사람들 등의 정보를 이용해서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정확히 말하면 좀 더 클릭할 가능성이 높은) 게시물을 먼저 보여준다.

만약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지구온난화가 사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본다면, 유튜브의 검색 알고리즘은 그 사람에게 지구온난화가 진짜라는 내용의 영상보다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는 내용의 영상을 먼저 추천해줄 것이다. 처음 이에 대해 검색했던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올린 영상에 점차 익숙해지고, 자신의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하고만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결국, 한쪽 주장에만 지속적으로 노출된 이 사람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지구온난화는 사기라고 외치고 다닐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새로운 지구온난화 반대 국제 컨퍼런스지구온난화는 정부가 만든 거짓말이다!’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참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서비스들이 사람들에게 더욱 폭넓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리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IT 기업들이 사용하는 사용자 맞춤 알고리즘은 오히려 이용자들에게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접하게 만든다.

거기에 더닝 크루거 효과도 이들의 확증편향을 더 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는 코넬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제안한 이론인데, 특정 분야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많이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시험공부를 할 때 벼락치기를 하는 학생은 어느 정도 공부가 끝나면 자신이 내용을 다 아는 듯이 느끼지만, 꾸준히 공부해온 학생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을 이 효과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유튜브와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만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다 아는듯한 기분으로 수년간 그 분야를 연구해온 과학자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다큐를 보고 놀랐던 점은 이 사람들이 왜 지구는 둥근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종교적인 신념과 같이 결과를 정해놓고 그 원인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시도가 아니라 단순히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 궁금해서라는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피상적으로만 파악했던 음모론자들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이 아니어서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이러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들에 의문을 가지고 왜 그런지 생각해보는 모습이 자칭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지구 평면설 공동체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기획하고 실제로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신의 섭리나 진리가 아니라 새로운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존의 과학 공동체가 너무나 교조화되었으며, ‘과학주의로 발전되어 하나의 종교적 신념과 같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들의 새로운 과학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느낀다. 기존 이론에 의문을 가지고 새로운 의견을 내는 이들의 태도는 전혀 비난할만한 거리가 아니다. 기존의 생각을 의심하는 것, 그것 자체가 가장 핵심적인 과학의 전제가 아닌가.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부 모자라거나 멍청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학도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그들이 가진 과학적인 호기심, 기존의 이론을 믿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능력은 적절한 과학적 배경 지식만 가미된다면 과학계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다큐에 나온 물리학 교수가 한 말이다.

물론 이들의 과학탐구 과정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큐 속에서 지구 평면설 공동체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이로스코프, 레이저 등 과학적인 도구를 사용해 실험을 진행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하는 결괏값이 나오지 않자, 실험 통제가 잘못되었거나 기기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며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새로운 실험을 계속해서 설계한다. 결국, 기존 과학을 대체하기 위해 세운 결론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선 결론을 세워놓고 과정을 거기에 맞추려 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되는 증거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해서 유사과학 세계관의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갈 수밖에 없다. 측정결과가 이상한 것은 미국 정부에서 기기를 만드는 기업들에 실제와 다른 값을 출력하도록 지시하였기 때문이고, 마찬가지로 달 착륙 사진은 나사가 사람들에게 거짓을 믿게 하려고 조작한 것이라는 설명이 된다. 결국 기존의 이론을 의심한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결론으로 갈수록 종교적 맹신으로 빠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지구 평면설과 같은 유사과학에 빠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 그리고 사명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모론을 믿는 사람 대부분은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과학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고, 그에 따라 저소득 비숙련 일자리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이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사회에서 실패자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로 취급되었던 이들은, 지구 평면설 공동체와 같은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유사과학은 주류 사회가 틀렸고, 자신이 생각하는 지식이 옳으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과 자신이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해준다. 사람은 누구나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감정을 원한다. 주류 사회 속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 감정들을 이런 공동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종교 공동체가 제공하는 긍정적인 효과와 비슷하게도 보인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소속감을 느끼고, 절대자에게 은총을 받는 자신의 특별함을 깨닫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세속주의와 종교의 수백 년간의 싸움 끝에 과학과 종교의 양립이 대부분 가능해진 것과 달리, 이러한 유사과학은 과학 그 자체를 불신하고 대체하려는 데에서 과학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 물론 개인이 어떤 신념을 가지던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이러한 유사과학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과학을 불신하는 여론이 퍼지면 정부의 과학 발전 투자가 줄거나 중단되는 등 과학 발전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 지구 평면설 같은 경우에는 남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지만, 음이온 물이나 게르마늄 팔찌와 같이 거의 사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고,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내용과 같은 유사과학은 사회의 집단면역을 해쳐 공동체에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사과학과 음모론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이를 믿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웃는 것을 그만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사과학 신봉자나 음모론 신봉자들에 대해 못 배운 사람들이나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욕하는 것은 잠시 기분은 좋아질지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논쟁이 마찬가지이지만, 해당 주제에 대해 다른 두 진영이 싸울 때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만든다. 상대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근거로 깔아뭉갠다는 태도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탐구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다행히도 이러한 유사과학과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미국이다. 아마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과 미국 역사로부터 비롯된 특유의 반지성주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입시 위주 교육으로 욕을 먹고 있긴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우수한 수준의 공교육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학식과 지성인을 대우해준 유교 문화 덕분에 미국에 비해서는, 유사과학을 믿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이런 비과학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분위기는 더 강한 듯하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앞으로 대한민국 이공계의 선봉인 우리 카이스트 학우들이 같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큐를 보기 전에 나는 남들이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할 때마다 짜증이 나면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느꼈다. 그들을 나와 같은 한 명의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개인으로 보지 않고, 통째로 멍청한 사람들로 묶어버린 채 이해하기를 포기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들을 이해하게 된 지금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사회가 교육 시스템에서 뒤처진 이들을 낙오자로 낙인을 찍어 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큐 속 교수의 말처럼 이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학교에서 수업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아이가 있을 때 그 아이를 비난하는 것과 같다.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하면 반성해야 하는 것은 선생님과 학교지 죄 없는 아이가 아닌 것처럼, 우리 과학계와 사회는 어떻게 이들을 데리고 같이 갈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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